서평

[서평] 자살 심리치료의 실제 (2/2)

군만두서비스 2020. 8. 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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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환자들이 내게 퉁명스럽게 "왜 자살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왜 나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일이 있다. 그러면 나도 퉁명스럽게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잘 살게 될 거라고 믿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p.183

 


 

 

'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네. 어떡하지?'

 

 이에 대한 대답이 지난 번 글이었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방법을 적었다. 상황이 급박할 때 언제든지 기억할 수 있도록 5단계로 나누어 행동요령을 정리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서평과 분리해서 따로 업로드했다. 이번 서평은 좀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적는다. 이미 자살의사를 밝힌 사람과 여러 차례 상담을 이어가는 상황이거나, 아직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도 각자가 가진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상담해줄 때에 적용하면 좋을 방법들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방법들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저자는 54가지의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치료자마다 자신이 사용해보고 싶거나 그렇지 않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는 치료법을 소개하는 순서도 일부러 무작위로 배치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방법 중에 내가 유용하다고 느낀 방법 몇 가지를 골라서 크게 4가지 주제로 정리해보았다.

 

 

 

1. 관계를 형성하자

 

 상담의 기본은 관계(rapport) 형성이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다. 나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이 생각하기에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우선은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상대방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확인한다거나, 주변 물건을 정리하는 행동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야 한다. 편안한 의자가 놓여있고, 대화하는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공간이면 좋겠다. 아쉽게도, 대한민국 육군의 또래상담병으로 활동하는 나에게 그런 공간은 없다. 그래도 최소한 다른 사람이 벌컥벌컥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올까 봐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내담자가 문을 등지고 앉게 유도해야 한다.

 

 어느 정도 대화의 환경을 갖추었다면, 이제 신뢰를 쌓을 차례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는 내담자의 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자살하려는 사람의 대부분은 세상에 자기 편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내가 내담자의 편이 되어 주거나 "나는 너의 편이야." 하고 말해주는게 좋다. 내담자의 편에 서있음을 말하면서 "예전에 너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 하고 자연스레 덧붙여보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신뢰를 쌓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런 적이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자. 많은 일이 그렇듯이 신뢰를 쌓는 일도 꾸준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2. 권한을 부여하자

 

 신뢰를 구축하면서, 내담자에게 권력을 주자. 자살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내가 주로 상담하는 군대 후임들은 선임들의 기에 눌려서 자기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상담에 관해서는 권력을 휘두르는 느낌을 가지도록 도와주자. 상담에 관한 만남, 시간, 이야기에 대한 권한을 내담자에게 넘겨주면 좋을 것 같다.

 

 먼저, 만남의 권한.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 기왕이면, 상담할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아야 상담자도 휴식시간을 즐기고 본인의 정신건강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진다. 그래도 나는 전우들이 언제든지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주었다. - 이 권한 때문에 개인 시간을 뺏기는 건 슬프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전우를 내버려 두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 다음으로는, 시간의 권한. 상담 시간을 정할 때는 "내일 중에 언제 시간 괜찮아?" 정도로 물어보면서, 상담시간을 정할 권한이 내담자에게 있음을 느끼도록 도와주자.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권한. 어떤 일에 대해서 내담자가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면 그냥 내버려두자. 이 사람이 10분 안에 자살할 것만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말하기 싫은 내용을 꼬치꼬치 캐묻는 게 더 부담스럽다. 차라리 내담자에게 권력을 넘기고 "지금은 이야기하기 힘들어 보이네.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언제든지 이야기해도 괜찮아." 하고 넘어가자. 상담의 권력은 내담자에게 있다.

 

 

 

3. 희망을 전염시키자

 

 감기가 전염되고, 우울함이 전염되듯이, 희망을 전염시키자! 자살에 대한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들이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치료자의 신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 절대 자살을 승인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긍정하고 동의해야할 부분은 내담자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부분이다. 내담자의 인생에서 밝고 긍정적이었던 부분을 찾아주고, 내담자가 여기저기서 희망을 전염받을 수 있도록 인간관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절대 죽으려는 마음에 동의해주거나, 이만하면 됐지.. 하고 자살을 승인을 해주면 안 된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살하려는 사람을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비상버튼을 누르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폭풍전야에 주의하자

 

 자살하려는 많은 사람이 일단 자살을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평화로워진 내담자를 경계하자! 죽겠다는 결심은 내담자의 마음 속에서 고민하던 수많은 문제들을 잊게 해 준다. 일단 결심을 하고 나면 그들은 미소 짓는 부처의 얼굴과 비슷해진다.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던 전우가 갑자기 이런 미소, 이런 명랑함, 기적적인 치유 등을 발견하면 마음속에서 비상벨이 울려야 한다. 땡 땡 땡 땡 땡.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평화롭지? 이것이 나의 기적적인 능력인가? 죽기로 결심했나? 생활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내담자의 태도 또한 갑자기 변할 이유가 없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내담자의 마음을 알아보자.

 

- 오늘 엄청 행복해보이네. 왜 그런지 말해줄 수 있어?

- 어제 되게 힘든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오늘은 엄청 차분해 보이네.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어?

-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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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자랑스러운 또래상담병이다. 뭐 사실 대단한 역할은 아니고, 처음에는 휴가 좀 받으려고 자원해서 시작한 역할이었다. 막상 전우들의 고민을 차근차근 들어주다 보니 각자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정말 많고 내가 섣불리 공감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이 듣게 되었다. 정말 별 거 없는 내가, 우리 전우들의 삶에 이렇게 큰 영향력을 끼쳐도 되는 건가 싶어서 잠들기 전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또래상담병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거다. 내 전우들이 더 행복한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혹시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당신은 치료자일 수도, 내담자일 수도, 자살을 검색해서 들어온 분일 수도 있겠다.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정말 잘 살게 될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끝.

 

 

 

우리의 할 일을 마친 다음에는 우리 자신을 특별히 잘 돌보고, 우리의 친구와 가족을 너그럽게 대하며, 우유 한 잔과 과자 몇 조각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필요가 있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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