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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채식주의자

군만두서비스 2020. 11. 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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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네 그루의 나무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p.9

 

기대가 커서 얻을 게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맨부커 상을 받았고, 문유석은 2부에서 보물을 찾았다 하고, 표창원은 여성들의 심리를 이해해볼 기회라고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우리 부대 북카페에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시작부터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작가의 글솜씨는, 나를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서도 '내가 책을 벌써 다 읽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채식주의자>에는 내가 기대했던 두 가지가 없었다.

먼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진짜로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전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강력한 책을 읽었기 때문일 거다. 지영씨에 비하면, 영혜 씨와 '그녀'들은 훨씬 완곡한 어법으로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면에, 나는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책을 읽었다. 표창원 소장의 추천을 읽으며 '여기에는 <82년생 김지영>보다 강력한 메시지와 깨달음이 있을 거야!'라는 기대를 해버렸고, 이는 어쩐지 허무한 감정으로 돌아왔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 두려움. 그 안에서 나오는 방어적인 심리 이런 것들을 흥미로우면서도 다소 충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묘미와 맛이 있어요.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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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 멘토십]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는 표창원

경찰, 교수, 프로파일러, 방송인, 국회의원이라는 다양한 이력과 함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그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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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나의 '젠더 감수성'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혜 씨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인 걸까? 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며 내 감수성이 문제인지 아닌지 시시비비를 가려봤을 거다. 다만 오늘은, 내가 읽고 내가 느낀 만큼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진정한 '나'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조금 모자라고 부끄럽더라도, 무엇이 나의 의견인지 적어보기로 했다.

<채식주의자>에 없었던 다른 한 가지는 '생각'이다. 혹은 '감상'이나 '여운'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다 읽고 난 뒤에도 다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작가의 글솜씨에 집중하느라 그럴 수도 있고, 그냥 내가 느낀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무진기행> 해설을 읽으며 '꿈보다 해몽'이라고 경탄했던 기억 덕분이다.

딱 여기까지가 나의 감정, 나의 의견이다.여기까지 글을 적은 다음에야, 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어보았다. 그러자 '경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았지.'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나의 그릇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경험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험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 준다. 나의 군 생활이 딱 그렇다. 군대에 와서 겪고 있는 다양한 작업과 혹독한 체력단련, 그 자체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의미해 보이는 경험을 통해서도 나의 그릇은 커지고 있다.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영역을 벗어나면서 찾아오는 두려움을 이겨냈다.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방법이 많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그 덕분에 나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군 생활의 경험만큼이나, 소설을 읽는 경험 또한 그 자체로 소중하다. 소설의 상황에 들어가 그/녀들의 삶을 경험하면서, 내 생각은 자연스레 깊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감상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고 나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별다른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꼭 눈이 번쩍 뜨이거나, 대단한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세상 처음 겪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제 나는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계속 책을 읽고, 계속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야겠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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