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만두서비스

[에세이] Blackout (2021.04) 본문

생각

[에세이] Blackout (2021.04)

군만두서비스 2021. 5. 1. 15:00
반응형

 

탁,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생활관이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시끄러웠는데? 옆자리 후임도 당황한 듯 나를 쳐다봤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정전이었다.

 

 

*

 

 

정전을 겪어보셨나요? 저는 입대 후에만 두 번 겪었습니다. 하필이면 8월의 무더위가 한창일 때였어요. 에어컨이 없어서 땀은 줄줄 흐르고, 불 꺼진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만 떠다니는데, 그날따라 비상 발전기도 말썽이었죠. 짧은 정전이었지만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 전체가 정전되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이러한 사태를 대정전 혹은 ‘Blackout’이라고 부르는데요. 갑자기 도로에서 신호등이 꺼지고,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도 없고, 지하철과 엘리베이터도 멈추겠네요. 생각만 해도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Blackout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전력을 공급하는 데도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력은 수많은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데요. 발전소 또한 하나의 커다란 공장입니다. 수많은 설비가 작동하며 전력을 생산하는 공장이지요. 그래서 여느 공장과 마찬가지로 발전소를 운영하는데도 전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가 정전된 Blackout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전력이 없어서 전력을 공급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Blackout이 무서운 것이죠. 다행히 여기에도 해결책은 있습니다. 바로, 해결책을 알아보기 전에, 또 다른 Blackout부터 생각해볼까요?

 

 

*

 

 

“허허허.. 규민이 휴가 잘 다녀왔어?”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Blackout’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필름이 끊겼다고 말하는 만취 상태가 그렇고요. 7개월 만에 휴가를 다녀온 제 모습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휴가에서 복귀한 뒤로 후유증에 시달렸거든요. 물론 휴가를 기다리던 7개월의 시간도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10일간의 휴가를 마치며, 마지막 집밥이었던 갈비찜을 다 먹고, 주섬주섬 군복을 챙겨입기 시작할 때, 무언가 아찔한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속에서 대정전이 일어난 듯한 심정이었죠. 이윽고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Blackout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밥 먹기도 귀찮았습니다. 밥을 대충 먹으니 기운이 나질 않고, 기운이 없어서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이처럼 코로나 19와 장병 출타 제한은 많은 전우의 마음에 Blackout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암담함을 ‘코로나 Black’ 이라고도 부르더군요. 다행히 여기에도 해결책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블랙이든, 대정전 상황이든 ‘Blackout’ 해결책은 같았습니다.

 

 

*

 

 

1. Black Start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지요. 대정전 해결의 첫걸음은 ‘Black Start’입니다. 앞서 대정전 상황에서는 ‘발전소’도 운영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발전소는 대정전 상황에서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물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수력 발전소가 그렇습니다. 이런 발전소를 다시 운영하는 절차가 Black Start입니다. 이를 통해 공급되는 전력은 생각보다 적은 양입니다. 하지만 다른 발전소의 운영을 재개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죠. 덕분에 대정전 해결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Blackout을 겪고 있다면 우선 Black Start부터 시작해봐요. 쉽고 재미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HIM에 실린 연예인 화보를 넘겨보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작은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무언가 시작했잖아요! 화보를 넘기다 보면 인터뷰 기사들도 하나씩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눈길이 닿는 대로 읽다 보니, 어느새 HIM 한 권을 뚝딱 읽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볼 자신감까지 얻었죠.



2. Build Up

이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차근차근 ‘Build Up’ 하면서 대정전 복구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는데요. 처음부터 우리나라 전역을 복구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우리나라를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지역별로 Black Start를 진행합니다. 그다음에 지역 내의 발전소를 하나씩 복구하면서, 지역별로 전력공급을 재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지역을 하나로 연결하여 복구를 완료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우리 마음에도 Build Up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성공’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앞선 Black Start의 성공으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단한 일을 이뤄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작은 성공에 집중해봐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작은 성공을 더해보자고요. 저에게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이 Build Up의 단계입니다. HIM을 다 읽은 김에 글도 한 번 써보는 거죠. 이 역시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연예인 화보를 보는 일보다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완성하고 나면 뿌듯한 성취감이 찾아옵니다. 저만의 ‘작은 성공’인 셈이죠. 이렇게 얻은 성취감은 다시 제 마음속의 발전소가 되어줍니다. 더 큰 일에 도전하도록 제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 덕분에 푸시업을 몇 개 해보기도 하고, 소설책 한 권을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하나하나가 모여 다시 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3. Be careful

대정전과 코로나 블랙 사이에는 다른 점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기’인데요. 사실 대정전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사건입니다. 반면 우리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Blackout 되고는 하지요. 부대로 복귀하기 싫어서, 여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오늘 점심이 전투식량이라서, 우리는 암담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이유가 제각각이듯 복구하는 방법 역시 제각각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만의 복구 계획에 집중하세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대정전 복구계획(Restoration Plan)은 서로 다릅니다. 미국의 복구계획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우리만의 복구계획이 필요한 법이죠. 왜냐하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각자의 취향, 성격, 부대 분위기까지 모든 게 다릅니다. 그러니 남들의 기준은 잠시 접어두고요.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봅시다.

 

마지막으로, Blackout 복구는 원래 힘든 일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걸어가는 기분이겠죠. 잘하고 있나 싶다가도 다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Blackout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다시 밝은 미래를 향해 가는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응원해줍시다.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했다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토닥여주세요! 어둠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우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

 

 

 

반응형
Comments